(쓰러질 듯한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다. 거칠어진 손으로 무릎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눈빛이 멀리 어디론가 향한다. 긴 숨을 내쉬고,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여기까지다. 더 이상 걸을 힘도 없고, 더 이상 버틸 이유도 없다.
세상은 나를 지워가고, 나조차도 이젠 내 흔적이 사라질 걸 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어쩌지.
(손끝이 떨린다. 오래된 코트 안을 뒤져 구겨진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빛바랜 사진 속,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이 아이를…
이 아이를 나 없이 혼자 남겨야 하는 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뭔 줄 아니?
어른이 없는 아이야. 기댈 곳이 없는 어린아이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아니?
내가 없으면, 그 작은 손으로 어떻게 세상을 헤쳐 나갈까.
추운 밤, 혼자 잠들어야 할 텐데… 배고픈 날, 혼자 거리를 헤매야 할 텐데…
내가 곁에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외로울까.
(사진을 조심스럽게 접어 가슴 가까이 품는다. 마치 아이를 품 듯이.)
나는…
나는 그저 한때 실패한 인간이었고, 길 위에서 삶을 버틴 한낱 노숙자였을 뿐이야.
누군가에게 기억될 일도,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지.
그런데도, 이 아이에게만큼은… 나는 아버지였다.
비록 변변한 밥 한 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따뜻한 집도 마련해 주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 모두를 다해 이 아이를 지키고 싶었어.
그런데…
이제 나조차 이 아이 곁에 남을 수 없게 됐구나.
(고개를 떨군다. 희미한 미소를 짓지만, 그 안에 서글픔이 깃든다.)
이 아이를 부탁할 사람이 없다.
어디에도, 아무에게도…
이 세상은 너무 차갑고, 이 도시는 너무 빠르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이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겠지.
그런데…
제발,
이 아이만은… 이 아이만은 누군가가 보아주길 바란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내쉰다. 바람이 차갑게 스친다.)
혹시라도, 이 아이가 길을 잃고 방황하거든…
혹시라도, 이 아이가 누군가의 시선조차 받지 못하는 외로운 그림자가 된다면…
제발, 누군가가… 단 한 번만이라도 손을 내밀어주길 바란다.
이 아이를…
살게 해주길 바란다.
(잠시 침묵. 손에 힘이 빠진다. 사진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창백한 손끝이 그것을 다시 붙잡으려 하지만, 힘이 없다.)
이제…
나는 가야 할 시간이다.
(눈을 감는다. 거리는 그대로이고,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하지만 사진 속의 아이는 아직도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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