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나 혼자 소풍에 왔다. 소풍 가는 길에는 자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조용히 핸드폰을 한다. 소풍은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내게 아이디어에 대한 영감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소풍을 갔지만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다. 돌아와서 영화를 본다. 그냥 보기가 귀찮아서 4배속으로 빠르게 돌리고 결말 부분만 확인한다.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 악기를 사고 악보집을 본다. 잘 치고 싶어서 영상도 찾아봤지만 막상 연습하려고 하니까 너무 귀찮았다. 연습없이 그냥 처음부터 잘하고 싶다. 그냥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밥을 만들어 먹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귀찮아서 대충 사서 먹을려고 한다. 아.. 삶의 권태기가 온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고 일하지 않고 돈을 벌었으면 좋겠고 시행착오 겪지 않고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 역시 망상도 이런 망상이 없다고 생각하고 헛웃음을 지어본다. 인생이 뭘까? '인생은 소풍이다!' 라고 소리쳤다. 왜냐하면 정말 순식간에 휙휙 가버리거든.."
"그래, 인생은 소풍이다. 그리고 소풍은 반드시 끝나버린다. 하지만, 휙휙가버리지 않았다. 나는 한번이라도 소풍 가는 길을 진심을 다해 즐겨보았던가? 그리고 소풍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힘빠지고 기운 빠져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해놓고서도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별 다른 흥미나 관심없이 여기저기 대충 둘러봤다가 기대 이하의 실망만 갖고 다시 집이나 돌아왔었다. 소풍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소풍을 마치고 집에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소풍은 이미 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집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가 소풍일지 모른다. 모든 일에 내가 그랬다. 막상 애인이 생기면 감정이 금방 식어버리고 돈이 생기면 그 때만 잠깐 좋아라 써버리고 저축은 하지도 않고 꿈을 이뤄냈으면 그 순간만 실컷 기뻐하다가 다음 날이면 그저그렇다. 지금 하나의 생각으로 삶의 모든 의미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오늘 소풍처럼 예술가가 되는 '순간'만을 꿈꿔왔던 게 아닐까?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만을 위해 미친듯이 공부에 매달렸던 게 아닐까? 내가 오늘 소풍을 갔을 때도, 그냥 아름답고 멋진 장소를 보는 '순간'만을 위해 간 것이 아닐까?... 미친 듯이 생각의 늪에 빨려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12월 18일, 소풍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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