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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지망생을 위한 대본

(성우지망생을 위한) 독백 지문- 그 때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by 필사적으로산다 202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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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KgEQNlR4A6o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우리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무심한 듯 하시지만,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을 돌아보면 온기가 가득하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까? 내가 보기엔 사람은 시간을 먹고 사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의 사라진 세월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으니까..

사람은 시간을 다 먹고 나면 저 먼 세상으로 다시 한번 떠나는 것 같다. 나와 할머니는 어릴 적 말고는 딱히 큰 추억이 없다. 그냥 명절 날 그리고 어쩌다가 할머니가 우리 집에 방문하실 때면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우리집에 오시기만 해도 그렇게 좋았는데, 어느 덧 나는 부끄러웠던 건지 감정이 둔해진 건지 할머니가 와도 크게 기뻐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이 일기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다행히 할머니는 나와 같은 이세계에서 숨쉬며 살고 계신다. 내일은 안부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할머니에게 전화로 인사를 드린다. 할머니를 보면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할머니가 우리 엄마 나이 쯤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엄마가 할머니 나이가 되었다.

나도 세상 무서울 게 없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세상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으로 넘치던 어린 아이는 현실성에 뒤덮힌 어른이 되었다.

아직도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니까 어른아이쯤으로 하겠다.

할머니는 어렸던 내가 어른이 된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언젠가는 한번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지만 항상 일에 치여서 까먹고는 한다.

사람은 믿고 싶은 만큼 보고 싶은 만큼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마도 점점 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내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는 것은 더 이상 모순이 아니라 그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겠지?"

 

"사실.. 가장 요즘에 하고 싶었던 말은 있잖아 할머니, 나는 부자가 되고 싶고 정말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고 그런데.. 가장 그리운 순간이 언제인 줄 알아?

할머니 곁에서 텔레비전으로 그냥 만화영화 재밌게 보던 게 너무 그리운 거 있지.

나는 나의 현재의 삶을 사랑할거고 앞으로도 내 인생을 사랑해줄 것이다. 하지만 돈, 인간관계, 불안정한 인생 등등에 치여있는 지금으로써, 할머니와 소소하게 시간을 보낸 그 때가 냄새 좋은 향기로 강하게 내 머리속에 기억되어있다.

앞만 보고 미래를 위해 살아보겠다고 해도, 결국 추운 현실에 결국 따스했던 추억이란 이불을 덮게 된다."

 

"오늘 하늘이 참 맑고 푸르다. 그 때의 내 마음도 이렇게 푸르고 아름다웠을까? 그 감정과 그 순수함으로 살아보고 싶다. 과거는 참 신기하다. 항상 지나고 나서야 아름다워 보이는 노을과 같달까. 이젠 그 노을은 가버렸고 늦은 오후가 다시 찾아왔지만 왔지만 서로 다른 하늘인 셈이다.

세월은 가버렸고 그 때보다 주름진 할머니만 남아 계신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인생에서 더 이상 할머니가 안계실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옛날에 할머니 옆에서 보던 만화영화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시절 할머니와 함께했던 순간들도 애니메이션처럼 아름답지만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세상이 되었다."

 

"나를 과거에 사로잡힌 어린애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머리 깊숙한 곳에서 오는 향수에 본능에 따라 진하게 이끌리는 편이고, 향수는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에서 그렇듯 그때도 힘든 일도 있었고 지금보다 안 좋았던 점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원래 추억이라는 게 가시밭길은 모두 제쳐두고 꽃밭의 향기만 맡게 해주는 거 아니던가? 내 인생에도 다시 느껴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던 장면이 있었던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과거가 그리운 이유는 어쩌면 그 시간에 우리의 흔적과 때가 묻어있기 때문아닐까? 돌아갈 방법도 없고 그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딱히 없다. 추억에 미련까지 보태고 싶진 않으니까.

나는 지금의 시간 속에서도 향기를 만들어낸다. 나중에 맡아보면 그냥 날라갈 냄새일지 아니면 은은하게 남아있을 향인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아가보겠다. 그 어떤 순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서로 만날 일은 죽어도 없겠지만, 그 어떤 순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 인생을 계속 이어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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